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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제출하는 좋은 의견서가 가져야 하는 다섯 가지 덕목

 

 

1. 의견서란 

 

결론과 방향 변화를 주장하는 문서이면서, 판단의 경로를 설계하는 문서입니다. 수사 중 제출하는 변호인의견서는 단순히 “혐의가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는 문서가 아닙니다.

 

좋은 의견서는 수사기관에게 세 가지를 제공합니다.

 

① 무엇을 사실로 인정해야 하는가

② 그 사실을 어떤 법적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③ 그러기 위해 어떤 증거를 더 확인해야 하는가

 

따라서 의견서의 진짜 독자는 담당 수사관이지만, 동시에 그 사건 기록을 나중에 읽게 될 검사와 법원까지 잠재적 독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의견서는 사건 기록 속에 남습니다. 그 점에서 좋은 의견서는 단순한 설득문이 아니라 기록에 하나의 경쟁적 사건 서사를 심어 놓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를 위한 의견

 

가장 기본적인 의견서입니다.

예를 들어 고소인은, “피의자가 처음부터 돈을 갚을 의사가 없었다.” 라고 주장합니다.

변호인은 단순히 “편취의 고의가 없었습니다.” 라고 써서는 부족합니다. 그보다 먼저 그 결론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분해해야 합니다. 

 

계약 당시 피의자의 자산은 어떠했는가? 

실제로 일부 변제가 이루어졌는가?

사업은 실제 존재했는가?

자금은 어디에 사용되었는가?

언제부터 변제가 어려워졌는가?

 

즉, 주장 → 사실 → 증거 순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좋은 의견서는 수사관에게 “피의자의 말을 믿어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이 자료들을 확인하면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3. 평가와 판단의 전제를 검토하기 위한 의견

 

한 단계 높은 의견서입니다. 사건에서 사실 자체는 크게 다투어지지 않는데 그 사실의 의미가 문제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투자금인지, 대여금인지,

위탁금인지, 물품대금인지에 따라 법률적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때 좋은 의견서는 수사기관이 무의식적으로 채택한 평가의 전제를 찾아냅니다.

“현재 수사는 A라는 사실을 B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그러한 평가에는 C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C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습니다.”

 

형사변호사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결론 뒤에 숨어 있는 전제를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4. 사실 인정·판결 법리를 다투는 의견

 

여기에서는 판례가 중요해집니다. 하지만 판례를 많이 인용한다고 좋은 의견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의견서는 판례에서 판단기준을 추출합니다. 대법원이 어떤 사실을 중요하게 보았는지, 어떤 사정들의 결합으로 고의를 인정했는지, 반대로 어떠한 사정 때문에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를 추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사건과 비교합니다. 판례의 사실 → 판례의 판단기준 → 현재 사건의 사실 → 차이점 → 결론, 이렇게 구성 되어야 합니다. 특히 무죄 판결은 주문보다 사실인정 과정을 읽어야 합니다.

5. 증거의 적법성과 증명력을 다투는 의견

 

여기에서는 두 문제를 분리해야 합니다. 

 

첫째는 증거능력·수집절차의 적법성입니다. 

 

압수·수색의 범위, 영장 집행 절차, 참여권, 전자정보 탐색·선별·복제 과정, 임의제출의 실질적 임의성 등

그 증거를 적법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둘째는 증명력입니다. 

 

증거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증거가 수사기관이 생각하는 사실을 반드시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CCTV 한 장면, 카카오톡 한 문장, 계좌이체 한 건은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변호인은 “이 증거는 틀렸다”가 아니라 “이 증거로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 를 공격해야 합니다.

 

이것이 훨씬 정교한 증거 의견입니다.

6. 의견의 제출 시기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좋은 의견도 잘못된 시기에 제출하면 나쁜 의견서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 빨리 제출하면 수사기관에게 우리가 파악한 방어논리를 알려주어 그 약점을 보완할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늦으면 수사관의 심증과 사건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의견서가 단순한 변명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출 시기는 적어도 수사기관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 × 무엇을 아직 모르는가 × 앞으로 어떤 수사를 할 것인가 × 우리가 무엇을 공개하게 되는가를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7. 자세한 의견서가 필요한 경우

 

장문의 의견서가 필요한 사건은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사실관계가 복잡하고, 거래가 장기간 이어졌거나, 경제범죄처럼 거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범죄 여부 자체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또한 다수의 계좌내역·계약서·메신저·회계자료 등을 하나의 시간선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사건, 판례 법리가 복잡한 사건, 전문가 의견이나 기술적 설명이 필요한 사건은 상세한 의견서가 효과적입니다.

 

이 경우 의견서는 일종의 사건 설명서가 됩니다. 수사관이 2,000페이지 기록을 읽기 전에 변호인의 20페이지 의견서로 사건의 지도를 얻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8. 자세한 의견서가 오히려 위험한 경우

 

반대로 장문의 의견서가 위험한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수사 초기이고 상대방 주장이나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의 범위를 정확히 모르는 상황입니다. 변호인이 너무 많은 사실을 먼저 설명하면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몰랐던 사실, 몰랐던 사람, 몰랐던 계좌, 몰랐던 거래, 몰랐던 논리적 취약점

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불필요한 사실관계의 고정입니다.

 

첫 의견서에서 상세하게 사실을 특정해 놓으면 나중에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을 때 그 문장이 피의자의 진술과 함께 비교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도 변론입니다.

 

좋은 변호인은 “무엇을 쓸 것인가”뿐 아니라 “지금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9. 의견서를 여러 차례 제출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저는 오히려 이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의 거대한 의견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수사의 진행에 맞추어 의견서를 기능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컨대, 

 

1차 의견서 — 사건의 기본 구조와 핵심 쟁점

2차 의견서 — 피의자 조사 이후 확인된 쟁점

3차 의견서 — 객관적 증거 분석

4차 의견서 — 판례 및 법리 검토

5차 의견서 — 수사 종결 전 최종 의견

 

이렇게 되면 변호인의견서는 한 번의 주장(statement)이 아니라 수사과정과 계속 상호작용하는 일련의 개입(intervention)이 됩니다.

 

다만 “많이 제출한다”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사실·증거·법리 또는 판단 포인트가 없는 반복 의견서는 오히려 중요한 주장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의견서의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매번 수사기관의 판단을 한 단계 이동시키는가입니다.

10. 수사권이 없어진 검사에게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은 무의미한가?

 

오히려 이 질문이 앞으로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사와 기소 기능이 제도적으로 더욱 분리된다면,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의견과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에 제출하는 의견의 기능도 분화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의견서는 상대적으로 사실 발견·증거수집·수사 방향에 개입하는 문서가 됩니다. 반면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하는 검사에게 제출하는 의견서는 수사 결과로 형성된 기록을 기초로 과연 국가가 공소를 제기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하는 문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사가 직접 수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의견서가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검사가 직접 사건 현장을 경험하지 못하고 기록을 통해 사건을 판단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기록 속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변호인의 능력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향후 제도 개편의 구체적 법률·하위법령·사건기록의 송부 구조 및 의견 제출 절차가 어떻게 확정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결국 좋은 의견서의 덕목은 5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정확해야 합니다. 

한 문장의 사실 오류가 20페이지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둘째, 목적이 명확해야 합니다.

이 의견서를 읽은 사람이 무엇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것인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셋째, 증거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형용사가 아니라 자료가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절제되어야 합니다.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쓰는 것이 좋은 변론은 아닙니다.

 

다섯째, 시기를 계산해야 합니다.

의견서의 내용과 제출 시기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사단계의 좋은 의견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변호인의견서는 변호사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설명하는 문서가 아니라, 현재의 수사 단계에서 수사기관 또는 공소제기 판단자의 다음 판단에 필요한 사실·증거·법리를 가장 적절한 시점에 제공하는 문서다.

 

그리고 더 압축하면, “의견서는 많이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언제까지 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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