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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의 책상은 언제나 무겁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영혼의 상처가 된 밤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아침에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절망의 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밤의 진실이 '술'이라는 장막에 가려져 있을 때, 법률가는 누구보다 차가운 이성으로 증거를 살피고, 동시에 가장 따뜻한 가슴으로 양측의 인권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성범죄 사건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법리적 다툼이 벌어지며, 치밀한 사실관계 확정이 요구되는 ‘준강간죄’의 성립 요건과 ‘블랙아웃(Blackout)’에 대한 최신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깊이 있게 짚어보고자 합니다.

Q1. 준강간죄란 무엇이며, 일반 강간죄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A.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더라도,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 성립하는 중대 범죄입니다.
형법 제299조에 규정된 준강간죄는, 가해자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피해자가 술이나 약물, 수면 등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이나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태(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인 것을 '악용'했을 때 성립합니다. 처벌 수위는 일반 강간죄와 동일하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매우 엄중합니다.
대법원은 이 법조항의 보호법익에 대하여 "원치 않는 성적 관계를 거부할 권리라는 소극적 측면의 성적 자기결정권"(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이라고 명시하며,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약자를 보호하는 데 그 취지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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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만으로 준강간이 인정되나요? 의식이 아예 끊긴 '패싱아웃'이어야만 하는 것 아닌가요?
A. 기억의 부재 자체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은 '블랙아웃' 상태라 하더라도 '항거불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과거 실무에서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인 '패싱아웃(Passing out)'과, 스스로 걷거나 대화하는 등 행동은 가능하나 나중에 기억만 나지 않는 '블랙아웃(Blackout)'을 기계적으로 구분하여, 후자의 경우 심신상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이러한 단편적 판단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피해자가 의식상실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지만 알코올의 영향으로 의사를 형성할 능력이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행위에 맞서려는 저항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였다면 '항거불능'에 해당"(대법원 2018도9781 판결)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완전히 수면 상태에 빠진 패싱아웃이 아니더라도, 알코올로 인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정상적으로 행사할 수 없을 만큼 취해있었다면 범죄가 성립한다는 진일보한 법리를 제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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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그렇다면 피해자가 모텔에 걸어 들어가거나 자신의 이름을 대답하는 등 멀쩡해 보였다면 피의자는 무죄를 받게 됩니까?
A.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법원은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사건 전후의 '객관적 정황'을 종합하여 실체적 진실을 재구성합니다.
기억의 파편 속에서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네가 내 발로 걸어 들어갔으니 동의한 것 아니냐",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느냐"고 몰아세우는 것은 2차 가해입니다. 대법원 역시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하며 제반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습니다.
" 법원은 피해자의 범행 당시 음주량과 음주 속도, 경과한 시간, 피해자의 평소 주량, 피해자가 평소 음주 후 기억장애를 경험하였는지 여부 등 피해자의 신체 및 의식 상태가 범행 당시 알코올 블랙아웃인지 아니면 패싱아웃 또는 행위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정들과 더불어 CCTV나 목격자를 통하여 확인되는 당시 피해자의 상태, 언동, 피고인과의 평소 관계, 만나게 된 경위, 성적 접촉이 이루어진 장소와 방식, 그 계기와 정황, 피해자의 연령·경험 등 특성, 성에 대한 인식 정도, 심리적·정서적 상태, 피해자와 성적 관계를 맺게 된 경위에 대한 피고인의 진술 내용의 합리성, 사건 이후 피고인과 피해자의 반응을 비롯한 제반 사정을 면밀하게 살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또한 피해사실 전후의 객관적 정황상 피해자가 심신상실 등이 의심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음이 밝혀진 경우 혹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하에서라면 피고인과 성적 관계를 맺거나 이에 수동적으로나마 동의하리라고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인정되는데도, 피해자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피해자가 단순히 ‘알코올 블랙아웃’에 해당하여 심신상실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8도9781 판결)
이처럼 우리 법원은 단순히 걷는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CCTV 영상에 나타난 보행 상태, 당시 음주량과 음주 속도, 피해자의 평소 주량, 피고인과의 평소 관계와 만나게 된 경위, 사건 직전후의 언동 등 수많은 객관적 증거를 퍼즐처럼 맞추어 당시 피해자의 진짜 상태를 과학적으로 복원합니다.

Q4. 반대로, 합의에 의한 관계였음에도 피의자로 몰린 경우 어떻게 방어해야 합니까?
A. '동의'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인지 및 대응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가 아니었음을 다각적으로 소명해야 합니다.
서로 호감을 갖고 교감했다고 믿었는데, 다음 날 상대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고소를 한다면 피의자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습니다. 이때 감정적으로 억울함만 호소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 살펴본 대법원의 기준이 엄격해진 만큼 방어의 수준도 고도화되어야 합니다.
성범죄 수사 초기부터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관계 전후로 나눈 자연스러운 대화나 스킨십 정황, 사건 직후 상대방이 스스로 상황을 인지하고 옷을 챙겨 입고 귀가한 사실 등 상대방의 '행위통제능력'이 정상적이었음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들을 신속히 확보해야 합니다. 무죄 추정의 원은 성범죄 사건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헌법상 권리이며, 억울하게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일은 결단코 막아야 합니다.

서울주사무소
[진실을 향한 동행]
성범죄 사건은 가해자를 엄벌하여 피해자의 찢긴 일상을 회복시키는 정의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 한 명의 억울한 범죄자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시험받는 좁고 험난한 길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상처받은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여 흩어진 기억 속의 강압성을 대법원 판례의 치밀한 기준에 맞춰 증명해 내고, 억울한 피의자의 외침에는 과학적 증거를 통한 빈틈없는 방어권 보장으로 답하는 것. 그것이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변호사의 사명일 것입니다.
혼자 감당하기 벅찬 고통의 시간에 놓여계신다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물러나 차분히 법률적 나침반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잃어버린 일상과 평온을 되찾는 길에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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