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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맡아 관리하던 사람이 나중에 그 돈의 사용처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횡령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그 돈을 어디까지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입니다.
사용 목적·사용처·시기에 관하여 폭넓은 재량이 있었고, 사후 보고나 증빙 제출도 요구되지 않았다면 사용처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법률, 계약, 회사 규정, 결재절차, 분리보관 의무 등에 의해 돈의 사용방법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면 그 제한을 벗어난 사용 자체가 횡령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
- 자금의 사용 목적이 구체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는가
- 보관자에게 사용처·사용시기를 결정할 재량이 있었는가
- 결재·승인·분리계좌 등 자금통제 절차가 존재했는가
- 사용 후 보고·정산·증빙자료 제출 의무가 있었는가
- 실제로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는가
지금 해야 할 일
횡령 문제가 발생했다면 먼저 돈의 행방만 추적하지 말고, 계약서·내부규정·결재절차·계좌관리 방식·과거 자금운용 관행부터 복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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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은 비어 있습니다.
몇 년 전 들어왔던 돈은 이미 빠져나갔고, 영수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래전 지출이라 정확히 어디에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에서 묻습니다.
“그러면 이 돈을 어디에 썼습니까?”
대답하지 못하면 횡령일까요?
대법원은 최근 이 질문에 중요한 기준을 다시 제시했습니다.
20년 넘게 건물을 관리했던 형
대법원 2026. 9. 3. 선고 2025도11442 사건에서 피고인은 가족 소유 건물을 20년 이상 관리했습니다.
19개 호실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받고, 퇴거하는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고, 건물 관리비도 지급했습니다.
문제는 임대차보증금이었습니다.
피고인이 받은 보증금 가운데 일부가 나중에 부족해졌고, 피고인은 상당 부분의 구체적인 사용처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1심과 원심은 이를 업무상횡령으로 판단했습니다.
논리는 얼핏 자연스럽습니다.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인데 없어졌다.
어디에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면 횡령한 것 아닌가?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횡령에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돈의 행방’이 아니다
횡령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돈이 없어졌는지가 아닙니다.
그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20년 넘게 임대차보증금을 하나의 자금 흐름 속에서 관리했습니다.
새로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받고, 다른 임차인이 나가면 자신의 관리계좌에서 보증금을 돌려주고, 건물관리 비용도 지출했습니다.
공유자들은 오랜 기간 피고인에게 개별 지출내역을 보고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영수증이나 증빙자료를 제출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즉 피고인에게 단순한 ‘금고지기’의 권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건물을 관리하면서 자금의 사용처와 시기를 상당 부분 결정할 수 있는 포괄적인 관리재량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십 년이 지난 뒤 일부 돈의 사용처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바로
“그 돈을 자기 돈처럼 사용했다.”
고 추론해서는 안 됩니다.
대법원은 종전 판례에서도 사용 목적과 시기에 광범위한 재량이 있고 사후 보고나 증빙 제출도 요구되지 않는 자금이라면, 사용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영득의사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횡령죄의 불법영득의사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은 피고인이 아니라 검사입니다.
그러나 모든 돈이 그런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경계선이 있습니다.
“사용처를 설명하지 못해도 횡령이 아니다.”
라는 명제는 틀렸습니다.
어떤 돈은 처음부터 사용 목적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의 내부규정에서 특정 사업비로만 사용하도록 정해 놓았다거나, 돈을 별도 계좌에 보관하도록 했다거나, 지출 전에 대표자나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임대차보증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이나 위임내용에서
“각 임차인의 보증금은 별도로 보관한다.”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출금하려면 소유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는 식으로 관리방식이 정해져 있었다면 관리자의 재량은 매우 좁아집니다.
회사의 자금도 정관, 회계규정, 자금집행규정, 결재선, 법인카드 사용규정과 같은 통제장치가 존재한다면 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 역시 용도가 엄격하게 제한된 자금을 위탁받은 사람이 정해진 목적 이외에 사용한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지출이었다고 하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법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량이 있었던 돈인지, 목적이 특정된 돈인지를 반드시 구별해야 합니다.
횡령 사건에서는 ‘자금의 통제구조’를 복원해야 한다
그래서 횡령 사건을 볼 때 저는 돈의 흐름만 보아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돈 주위에 존재했던 규칙의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계약서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었는가.
회사 내부규정은 어떠했는가.
돈을 쓸 때 결재를 받아야 했는가.
별도 계좌로 관리했는가.
사용 후 영수증을 제출했는가.
매월 또는 매년 정산했는가.
과거에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했고 소유자나 회사가 이를 알고 있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자금사용 권한의 경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 자기 돈처럼 처분했을 때 비로소 횡령이라는 형사적 평가에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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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돈과 횡령한 돈은 같지 않다
회계상 돈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장기간의 관리 과정에서 증빙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관리자가 사용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민사적으로 정산해야 할 돈이나 반환해야 할 채무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 형법상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은 같은 명제가 아닙니다.
형사재판에서는 한 단계가 더 필요합니다.
그 돈을 맡은 사람이 자신에게 허용된 권한을 넘어 타인의 재산을 자기 소유물처럼 처분하였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대법원 2025도11442 판결이 다시 확인해 준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횡령 사건에서 질문은
“돈이 어디 갔습니까?”
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 돈을 어디까지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돈의 행방을 확인하는 것이 수사라면,
돈을 둘러싼 권한의 경계를 확인하는 것은 형사법의 일입니다.

서울주사무소
이 사건에서 확인해야 할 자료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면 다음 자료의 확보가 중요합니다.
계약서·위임장, 정관과 회사 내부규정, 자금집행 및 결재규정, 계좌내역, 과거의 정산자료, 영수증·세금계산서, 회계처리 내역, 이메일·메신저, 과거 동일한 방식의 자금집행 사례, 다른 관계자들이 관리방식을 알고 있었다는 자료입니다.
오래된 사건일수록 개별 영수증 한 장보다 장기간 형성된 자금관리 관행을 복원하는 자료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사용처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임의로 지출처를 만들어 설명하거나 뒤늦게 증빙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과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부분을 구분하고, 먼저 당시 자신에게 부여되어 있던 관리권한과 실제 자금운용 구조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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