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전화

들어가며: 파산을 앞둔 상황에서 경영자의 '선의'와 법의 '냉혹한 잣대' 사이
안녕하십니까. 고경환 변호사입니다.
경영의 위기에서 대표님들이 겪는 고통과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회사가 기울어가고 파산이 눈앞에 다가올 때, 적지 않은 대표님들이 유혹에 빠집니다. "어차피 파산으로 법원으로 넘어갈 재산이라면, 평소 도움을 주었던 지인이나 재단에 넘겨주자" 혹은 "나를 믿어준 특정 거래처의 빚만이라도 먼저 갚자"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경영자분들께 제가 꼭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내리는 이러한 감정적인 결정은 훗날 돌이킬 수 없는 법적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최근 선고된 부산회생법원의 판례를 통해, 파산 직전 절대 해서는 안 될 자산 감소행위(사해행위)와 이를 되돌리는 부인권 제도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1. 파산 절차에서의 엄격한 규칙 : '채권자 평등의 원칙'
파산 절차에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습니다. 회사가 망하게 되면, 남은 자산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여러 채권자가 각자의 채권액 비율에 맞춰 공평하게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규칙, 법은 이를 '채권자 평등의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특정인에게만 자원을 몰아주거나 몰래 빼돌리는 행위는 이 공정한 게임의 룰을 근본적으로 깨트리는 것이며, 법원은 이를 가장 엄격하게 배격합니다.
2. 반칙의 대가 : 일반채권자 자산 감소행위(사해행위) 금지
그렇다면 이러한 규칙을 깨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회사가 파산 직전에 자신의 재산을 고의로 줄여 남은 일반 채권자들에게 돌아갈 몫을 훼손하는 행위를 법률 용어로 '사해행위'라고 합니다.
• 멀쩡한 부동산이나 기계를 헐값에 매각하는 행위
• 특정 채권자에게만 편파적으로 빚을 갚는 행위
• 자산을 무상으로 제3자에게 기부하거나 양도하는 행위
이 모든 것이 규칙 위반에 해당합니다. 이는 경영자가 아무리 "회사를 살리기 위한 선의였다"고 항변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다른 채권자들의 몫을 가로챈 것이 됩니다.
3. 숨겨진 단서를 쫓는 파산관재인의 '부인권'
이러한 사해행위를 통해 이미 빼돌린 재산은 어떻게 될까요?
파산선고가 내려지면 법원이 파견한 파산관재인은 숨겨진 단서를 쫓는 탐정처럼 채무자의 과거 거래 내역을 철저히 추적합니다. 그리고 파산 직전에 부당하게 유출된 재산을 발견하면, 그 꼼수 거래를 법적으로 무효화하고 재산을 다시 회사(파산재단)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인권'입니다.
4. 최신 판례 분석: 200억 원대 무상 기부의 최후 (부산회생법원 2026. 2. 13. 선고 2025가합1038)
최근 이 부인권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타일 제조회사인 B사는 파산하기 전, 무려 201억 원 상당의 기계설비를 A재단에 '무상 기부'했습니다. 그러고는 월 2억 4천만 원의 임대료를 내며 그 기계를 다시 빌려 썼습니다.
회사가 파산하자 파산관재인은 이 기부행위의 무효를 주장했고, A재단은 "실사주가 자금을 지원해 주는 대가로 맺은 정당한 거래였다"고 맞섰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냉혹했습니다.
채권자 손해 발생: 200억 원 상당의 핵심 유형자산을 무상으로 넘긴 것은 회사의 적극재산을 감소시켜 일반 채권자들에게 명백한 손해를 입히는 행위(사해행위)에 해당합니다.
대가성 증명 부족: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기부했다는 명확한 증거(계약서 등)가 없고 구두 약속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투입되었다는 290억 원 역시 수시로 넣고 빼는 단기 대여금(가수금) 형태여서, 기계 가치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적 지원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재무 상태의 악화: 기부 직후 B회사의 자산은 반토막이 났고, 오히려 빚이 자산을 초과하는 부채 초과 상태에 빠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기부 후 맺은 임대차 계약 때문에 B회사는 A재단에 약 67억 원의 미납 임대료 빚까지 추가로 지게 되어, 결국 이 기부행위가 파산을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200억 원대 기부행위를 취소(부인)하여, 해당 기계가 파산한 B회사의 소유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5. 전략적인 청산의 중요성
이제 경영자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더 큰 위험(형사적 배임·강제 환수)을 자초하고 있지는 않은가?"
파산 직전의 섣부른 자산 처분은 회사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 경영자 본인의 퇴로마저 끊어버리는 가장 치명적인 악수입니다. 감정이 아닌 냉정한 법적 잣대로 자산을 보존하고 청산의 순서를 밟아야 합니다.
맺으며: 파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고도의 전략적 법률 과정입니다
저는 도산과 파산 절차가 단지 회사가 문을 닫는 패배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은 이해관계자들의 권리를 투명하게 정리하고, 경영자 본인의 존엄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고도의 전략적 법률 과정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회사가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 혼자서 자산을 정리하려는 무모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정확한 도산 법리를 바탕으로 가장 합법적이고 안전한 출구 전략을 설계해야 할 마지막 골든타임입니다. 위기의 순간, 여러분을 안전한 길로 안내하는 치밀한 전략적 동반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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