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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록을 확인해 보니 고소인도 충분히 조사했고, 피의자도 여러 차례 조사했으며, 계좌·메신저·계약서 등 필요한 객관적 자료도 대부분 확보되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불송치 판단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수사가 충실한 사건에서도 같은 사실을 어떻게 법적으로 평가할 것인지, 어떤 증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구성요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불송치심사부의 역할은 수사 누락을 찾아 재수사를 요구하는 데만 있지 않다. 이미 확보된 기록을 다시 평가하여 사실관계와 법률 사이의 연결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역시 중요한 심사업무가 될 것이다.

불송치 결정에 이의가 있어 수사기록을 열어봤다.
그런데 예상과 달랐다.
고소인의 진술도 충분히 들어가 있다.
피의자도 여러 차례 조사했다.
주요 참고인도 조사했다.
계좌내역과 계약서도 확보했다.
휴대전화 메시지도 확인했다.
딱히
“왜 이것을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지적할 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건은 끝난 것일까.
아니다.
여기서부터 전혀 다른 종류의 불송치심사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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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와 판단은 다른 문제다
수사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누가 돈을 보냈는가.
누가 어떤 말을 했는가.
계약서는 어떻게 작성됐는가.
회사의 내부 절차는 무엇이었는가.
그 돈은 어디에 사용됐는가.
이런 사실을 확인한다.
하지만 확인된 사실을 놓고
사기인가.
횡령인가.
배임인가.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인가.
를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재 경찰수사규칙도 불송치 결정을 ‘혐의없음’ 가운데 범죄인정안됨과 증거불충분으로 나누고, 그 밖에 죄가안됨·공소권없음 등을 별도의 결정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만큼 사실확인과 법률평가는 구별해야 한다.

같은 사실을 보고도 법률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회사 대표가 회사 계좌의 돈을 개인 계좌로 옮겼다.
이 사실은 분명하게 확인됐다.
대표는 이렇게 주장한다.
“회사 경비를 먼저 개인 돈으로 지출했기 때문에 나중에 정산한 것입니다.”
수사기관은 회사 운영 과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정산이라고 보아 횡령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런데 기록을 다시 보면,
정산을 승인한 사람이 없다.
회사 내부규정상 일정 금액 이상은 별도 승인이 필요했다.
대표가 주장하는 선지출에 대한 영수증도 충분하지 않다.
회계장부에도 사후 정산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사실관계는 이미 모두 조사돼 있다.
문제는 이 사실들의 법적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이다.
추가 계좌추적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새로운 참고인을 부르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오히려 판례를 다시 찾아보고 기존 기록을 재배열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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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송치심사부가 반드시 재수사를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중요하다.
불송치심사부를
“수사 미진을 발견하여 경찰에 사건을 돌려보내는 조직”
정도로 이해하면 역할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수사는 충분했지만 법률판단에 문제가 있다면 필요한 것은 추가수사가 아니라 기존 기록의 재검토일 수 있다.
예컨대 기록에 필요한 사실이 모두 나타나 있는데도 경찰이 구성요건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대로 객관적 사실은 충분하지만 고의 인정에 필요한 간접사실의 의미를 너무 크게 평가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사건은 재수사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가의 판단 문제가 된다.
그래서 불송치 결정서를 볼 때 ‘사실 문제’와 ‘법률 문제’를 나눠야 한다
불송치심사부 검사가 사건을 분류할 때 좋은 질문이 하나 더 생긴다.
이 사건의 문제는 사실이 부족한 것인가, 법률평가가 문제인 것인가.
사실이 부족하면 재수사 가능성을 검토한다.
법률평가가 문제라면 판례와 법리를 본다.
두 문제가 섞여 있다면 어느 부분이 먼저 해결돼야 하는지를 구별한다.
이렇게만 해도 불필요한 재수사를 줄일 수 있다.
대법원 판례만 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사건도 있다
대법원 판결은 법리를 제시한다.
그러나 실제 형사사건에서 어려운 것은 종종 추상적인 법리가 아니다.
우리 사건과 같은 사실관계에서 그 법리가 어떻게 적용되는가이다.
그래서 하급심 판결도 중요할 수 있다.
비슷한 거래구조,
비슷한 회사 내부관계,
비슷한 자금 사용방식,
비슷한 피고인의 변소가 있었던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사실을 중요하게 보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하급심 판결에서 피고인이 회사 자금을 사용했더라도
사전에 정해진 내부 절차,
이사들의 인식,
회계처리,
사후 정산 여부 등을 종합하여 불법영득의사를 판단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 사건에서도 묻게 된다.
그 요소들이 모두 확인되어 있는가.
확인돼 있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판례는 수사자료가 아니라 판단자료가 된다.
국내 판례가 없으면 리서치 범위도 넓어질 수 있다
최근에는 기존 형법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건이 계속 등장한다.
AI.
플랫폼.
가상자산.
온라인 광고.
알고리즘.
디지털 자산.
다국적 금융거래.
국내 판례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 판례를 비교법적 자료로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외국 판결이 그대로 대한민국 형사사건의 법적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외 법원이 비슷한 사실관계에서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보았는가
를 확인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 판단요소를 다시 우리 형법의 구성요건과 연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과 판례평석은 ‘판단의 시야’를 넓힐 수 있다
형사법 논문, 판례평석, 법률전문가들의 분석 기고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좋은 논문은 결론을 대신 내려주는 자료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질문을 던져준다.
예를 들어 어떤 논문에서 기업 배임사건의 고의 판단에
거래 당시의 정보,
의사결정 구조,
손익의 귀속,
사업판단 과정
등을 구별해서 살펴야 한다고 분석했다면,
그 분석을 가지고 기록을 다시 읽을 수 있다.
이미 자료는 모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을 새로운 질문으로 다시 배열하는 순간 사건이 달라 보일 수 있다.
고소대리인의 역할도 달라진다
수사가 충분한 사건에서
“추가수사를 해주십시오.”
라고 반복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고소대리인은 이렇게 주장해야 한다.
필요한 사실관계는 대부분 수사기록을 통하여 확인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추가적인 사실확인이 아니라 이미 확인된 사실에 대한 법률적 평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불송치 결정이 전제로 한 법리와
관련 대법원 판례와
사실관계가 유사한 하급심 사례를 비교한다.
필요하면 해외 판결과 논문도 보조자료로 제시한다.
마지막에는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경찰이 인정한 사실관계 자체를 전제로 하더라도 해당 구성요건에 관한 법률적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은 경찰 단계 고소대리와 완전히 다른 문서다.

피의자 변호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불송치 결정을 받은 피의자라면 어떻게 할까.
고소인이 이의를 신청했다고 무조건 새로운 증거부터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경찰이 확보한 기록이 충분하고 불송치 결정의 법률논리도 타당하다면,
왜 기존 사실관계를 전제로 해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지
를 정교하게 설명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불송치심사부가 양쪽 의견을 읽었을 때
“추가수사를 할 사건인가”
와
“법률판단으로 정리할 사건인가”
를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좋은 불송치심사는 ‘재수사 건수’로 평가할 수 없다
불송치심사부가 일을 잘하는지를
재수사 요구를 몇 건 했는지로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재수사가 필요한 사건에 정확하게 재수사를 요구하고,
수사가 충분한 사건은 법률판단을 다시 검토하고,
경찰의 판단이 타당한 사건은 신속하게 종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모든 문제를 재수사로 해결하려 한다면 불필요한 사건 왕복이 발생한다.
경찰은 다시 기록을 받는다.
다시 조사한다.
다시 결과를 보낸다.
그 사이 사건관계인도 지친다.
그러므로 불송치심사부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더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실인가, 아니면 이미 확인된 사실에 대한 더 정확한 법률판단인가.”
이 질문이 분명해야 한다.

서울주사무소
결국 불송치심사부는 ‘두 종류의 오류’를 찾아야 한다
첫 번째는 수사의 오류다.
확인해야 할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경우다.
이때는 필요한 재수사를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두 번째는 판단의 오류다.
사실은 충분히 확인했지만 그 사실의 법률적 의미를 잘못 평가한 경우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사가 아니다.
판례를 다시 보고,
법리를 다시 검토하고,
기록 속 사실을 다시 배열하는 것이다.
둘을 구별하지 못하면 모든 사건이 재수사 사건이 된다.
둘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면 불송치심사는 훨씬 정교해진다.
그래서 수사기록을 모두 읽은 뒤
“경찰이 필요한 조사는 다 했다.”
는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검토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사실들을 가지고 정말 이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불송치심사부의 법률가로서의 역할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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