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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이스피싱 사건을 상담하다 보면 “친구가 환전을 부탁해서 도와줬을 뿐인데 갑자기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 전달 방식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피해자로부터 현금을 직접 받아 조직원에게 전달하는 이른바 ‘현금수거책’뿐만 아니라, 피해금이 입금된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여러 계좌를 거쳐 돈을 송금하는 방식도 이용된다.
최근에는 정상적인 환전 거래를 가장하는 방식도 문제가 된다. 국내 계좌로 들어온 돈을 현금으로 인출하여 환전업자에게 전달하고, 이를 다시 외화로 환전하여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이 밖에도 가상자산을 매수하여 특정 전자지갑으로 전송하게 하는 등 자금의 흐름을 복잡하게 만드는 방식도 사용될 수 있다. 겉으로는 단순한 현금 인출이나 환전, 송금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범죄수익을 다른 사람이나 해외로 전달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 보이스피싱 조직과 아무런 관계가 없던 사람이 친구나 지인의 부탁을 받고 끼어드는 경우다. “환전할 사람이 있는데 네 계좌를 잠깐 이용하자”, “돈이 들어오면 현금으로 찾아 달라”, “외화로 바꿔서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단순한 심부름이나 환전이라고 생각해 들어주었다가 보이스피싱 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스피싱 조직의 실체도 모르고 전체 범행구조도 몰랐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공범이 되기 위해 조직의 총책이 누구인지, 피해자를 어떤 방법으로 속였는지, 피해금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흘러가는지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방조범의 경우에도 주범이 저지르는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인식할 필요는 없고, 미필적으로 인식하거나 예견한 정도로도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이때 실무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미필적 고의’이다. 쉽게 말하면 처음부터 “이 돈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이다”라고 확실히 알고 있어야만 고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혹시 이거 불법적인 돈 아닌가?”, “뭔가 이상하고 꺼림칙한데…”라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설마 그렇겠어’, ‘그래도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계속했다면 범죄일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환전이라면서 왜 자신의 계좌로 모르는 사람들의 돈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거나, 여러 사람으로부터 반복적으로 돈이 입금되고 이를 곧바로 현금으로 찾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상함을 느꼈음에도 계속 같은 일을 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신은 단순히 환전만 했다고 생각하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는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하여 당시 범죄와 관련된 돈일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그렇다면 의심이 들어 친구에게 “이거 보이스피싱 아니지?”라고 물어보고 친구가 아니라고 해서 그대로 믿었다면 어떨까? 이 역시 반드시 유리한 사정이라고만 볼 수 없다. 오히려 “보이스피싱인지 직접 물어봤다는 것은 당시 이미 보이스피싱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뜻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거래방식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는데도 상대방의 말만 믿고 별다른 확인 없이 계속 돈을 인출하거나 환전했다면 의구심을 충분히 해소하지 않은 채 범행 가능성을 용인한 것으로 평가될 위험이 있다.
“나는 대가를 얼마 받지도 않았다”는 항변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았거나 소액의 대가만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형사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담당한 환전·인출·전달 행위가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고 범죄일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계속하였다면 받은 대가가 크지 않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 물론 경제적 이익이 없거나 매우 적었다는 점은 범행 가담 정도나 양형을 판단할 때 유리한 사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얼마를 벌었느냐’와 ‘범죄에 가담할 고의가 있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때문에 이러한 사건에서는 경찰의 최초 조사부터 진술을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한다. 수사관이 “그래도 여러 사람 돈이 계속 들어오니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죠?”, “친구가 계속 현금을 찾아 달라고 하니 찜찜하지 않았어요?”라고 질문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조금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약간 꺼림칙했던 것은 맞습니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별 의미 없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수사기록에 남으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상함을 느꼈다는 것은 곧 범죄 가능성을 의심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계속 환전·인출·전달했다는 구조로 연결되어 미필적 고의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사 과정에서 무조건 “아무것도 몰랐다”고 답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의심했던 사실이 있다면 사실대로 진술해야 한다. 다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반복되거나 유도적인 질문에 맞추어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에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건 당시 실제로 무엇을 생각했는지와 지금 돌이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환전이나 자금전달에 관여했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보이스피싱 공범이 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 부탁을 받게 된 경위, 부탁한 사람과의 관계, 정상적인 거래라고 믿게 된 이유, 돈이 입금된 방식과 횟수, 인출·전달 방법, 대가를 받았는지 등을 종합하여 실제로 범죄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히 몰랐다는 사정과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것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친구나 지인의 부탁으로 환전이나 현금 인출·송금 업무를 하다가 경찰로부터 보이스피싱 사건과 관련하여 출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면 단순히 “나는 조직도 모르고 돈도 얼마 받지 않았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무엇을 했는지만큼이나 그 일을 할 당시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의심하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언제부터 무엇을 알았는가, 무엇을 의심했는가, 그럼에도 왜 계속했는가’에 대한 최초 진술이 사건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첫 경찰 조사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법무법인 법승 서울사무소 고경환 변호사
출처 : 인사이드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