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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대구고등법원 1970. 6. 24. 선고 70노138 형사부 판결 [강간등피고사건] [고집1970형,71]- 혼인중에 있는 부부사이에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

 

 

 

 

 

“피고인은 1969.7.16. 03:00경 경주시 황오동 256소재 신광여인숙 2호실에서 

 

피고인으로부터 2일간이나 감금당하여 기진맥진한 피해자 공소외 1의 옷을 모두 벗기고 배위에 올라탄 다음 엉덩이로 배를 굴르고 물걸레로 입을 틀어막고 잇빨로 그 뺨을 물어뜯는 등 약 1시간 동안 폭행을 가하여 

 

공소외 1로 하여금 항거불능케 한 후 질내에 자기의 음경을 넣어 간음한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강간죄가 성립될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다.

 

강간의 점에 대한 원심의 사실인정을 탓하는 논지를 보건대, 원심공판조서 및 당심에서의 피해자 공소외 1의 증언내용에 의하면 

 

공소외 1은 피고인을 간통죄로 고소함과 동시에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가 본건 간음사건이 발생한 이틀전에 피고인으로 하여금 상간자인 공소외 2와 손을 끓고 새출발하기로 협의를 한후 고소를 취하한 사실이 명백한 바, 

 

이러한 점으로 보면, 법률상 부부관계에 있었던 피고인에 대하여 피해자가 정교승락이나 정조권포기의 의사표시를 철회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심이 피고인에게 정교청구권이 없다는 것을 전례로 하여 피고인의 본건 간음행위를 강간죄로 인정한 것은 중대한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쳐다고 볼 것이므로 이 점에 대한 항소논지는 그 이유있다 할 것이고”

 

 


1. 1970년, '정조'라는 이름에 갇힌 인권 (Historical Context)


 

이 판결이 선고된 1970년 6월 24일은 가부장적 질서가 공고하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법원은 혼인 관계를 일종의 '정교청구권(Right to Demand Sexual Intercourse)'이 발생하는 계약 관계로 이해했습니다.

 

 

부부간 강간죄 부인 (Refusal of Marital Rape) 

 

당시 판례의 주류적 입장은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성적 성실의무를 지므로, 남편이 강제로 아내를 간음하더라도 이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폭행의 잔혹성

 

판결문에 묘사된 피고인의 행위(감금, 입을 틀어막음, 뺨을 물어뜯음)는 현대법상 명백한 강력 범죄입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이러한 참혹한 폭력보다 '법률상 부부관계'라는 형식적 틀을 우선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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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요 법률 용어 및 논리 분석 (Legal Analysis)

 

 

① 정교승락 및 정조권포기 (Consent to Intercourse)

 

법원은 아내가 남편과 다시 살기로 하고 간통죄 고소를 취하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아내가 "성관계를 승낙하거나 자신의 정조권을 포기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피해자가 정교승락이나 정조권포기의 의사표시를 철회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 논리는 아내의 몸을 인격체가 아닌 남편의 권리 행사를 위한 '대상'으로 간주한 비극적인 법리입니다. 1시간 동안 가해진 잔혹한 폭행조차 이 '권리'의 행사 과정으로 치부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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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정교청구권 (Right to Claim Sexual Intercourse)

 

과거의 시각: 부부 사이에는 성관계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상대방은 응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현대의 시각: 현재 대한민국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부부 사이라도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강제적 성관계는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선언했습니다. 70년대의 이 판결은 인권 감수성이 미비했던 시대의 뼈아픈 유산입니다.

 

피해자 공소외 1이 겪었을 사건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결심했다가, 다시 잘 살아보자며 고소까지 취하해주었음에도 돌아온 것은 2일간의 감금과 처참한 폭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법은 그녀에게 "부부니까 참아야 한다" 혹은 "네가 다시 살기로 하지 않았느냐"며 등을 돌렸던 것입니다.

 

치밀한 법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의 법원은 혼인의 본질을 남녀의 '인격적 결합'이 아닌 '의무의 이행'으로만 보았습니다. 과학적·상식적으로 보아도 1시간의 폭행이 동반된 행위를 '권리 행사'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는 법이 가해자의 폭력을 정당화해준 것입니다.

 

50 전의 판결이나 고통을 견뎌냈을 피해자분께 늦게라도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법은 차갑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녀의 눈물과 상처는 결코 무죄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적 자기결정권(Sexual Self-Determination)'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낼 있게 것은, 어쩌면 이처럼 아픈 판결의 역사를 딛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중요한 인권의 발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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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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