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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송치심사부에 적체된 사건이 많다면 모든 기록을 처음부터 같은 깊이로 읽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부장검사가 가장 먼저 만들 수 있는 사건 분류 기준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불송치 결정서가 얼마나 잘 작성되어 있는가.
불송치 결정서가 쟁점과 증거, 당사자의 주장, 법률판단을 충실하게 연결하고 있다면 심사의 출발점이 명확해진다. 반대로 결정서가 결론만 제시하고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가 기록을 한 단계 더 깊게 들여다보아야 할 신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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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송치심사부에 사건이 수백 건 쌓여 있다고 생각해 보자.
부장검사는 검사들에게 사건을 배당해야 한다.
그런데 사건번호만 보고서는 어느 사건이 쉬운지, 어느 사건이 어려운지 알 수 없다.
죄명만으로도 판단하기 어렵다.
사건금액이 크다고 반드시 어려운 것도 아니고, 기록이 얇다고 간단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볼까.
나는 가장 먼저 불송치 결정서의 품질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행 경찰수사규칙상 불송치 결정서에는 피의자, 죄명, 주문과 함께 **‘피의사실과 불송치 이유’**가 기재된다. 불송치의 주문도 혐의없음, 죄가안됨, 공소권없음 등으로 구분된다.
즉 불송치 결정서는 단순히 결과를 통보하는 문서가 아니다.
경찰이 무엇을 수사했고, 어떤 사실을 인정했으며, 왜 그 결과 범죄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문서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 문서 자체가 불송치심사부의 첫 번째 선별도구가 될 수 있다.
성실한 불송치 결정서는 무엇이 다른가
좋은 불송치 결정서는 읽으면 사건의 구조가 보인다.
고소인이 무엇을 주장했는지 알 수 있다.
피의자가 어떻게 반박했는지도 알 수 있다.
어떤 객관적 증거가 있는지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이 증거를 가지고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그 연결이 보인다.
예를 들어 사기 사건이라면 단순히
“편취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약 당시 피의자의 자금상태,
계약 이후 이행행위,
변제 노력,
당사자 사이의 기존 거래관계 등을 종합하여 왜 기망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운지 설명하는 방식이다.
횡령 사건이라면
돈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누가 보관자의 지위에 있었는지,
지출 권한은 누구에게 있었는지,
실제 사용처는 무엇이었는지,
내부 승인이나 정산은 있었는지 등을 검토하여 결론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 정도 결정서라면 불송치심사부 검사는 처음부터 수백 페이지의 기록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먼저 결정서의 논리를 검증하면 된다.
반대로 부실한 결정서는 어떤 모습일까
문제는 이런 결정서다.
고소인이 제기한 핵심 쟁점에 대한 언급이 없다.
피의자의 진술은 정리되어 있는데 객관적 자료에 대한 평가가 없다.
중요한 증거가 존재하는데 결정 이유에서 다루지 않는다.
또는
“피의자의 변소를 배척하기 어렵다.”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라는 문장으로 사실상 판단이 끝난다.
그러면 불송치심사부 검사 입장에서는 질문이 생긴다.
왜 부족한가.
어떤 증거가 부족한가.
확보할 수 없어서 부족한 것인가.
확보했는데도 부족한 것인가.
상반된 증거가 있는데 왜 한쪽을 채택했는가.
이 질문에 결정서가 답하지 못한다면 결국 기록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렇다면 부실한 결정서 자체가 심층검토의 신호가 된다.
그래서 1차 분류표를 만들 수 있다
부장검사가 사건을 세 유형 정도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A형 — 성실한 불송치 결정서
쟁점이 정리되어 있다.
주요 당사자의 주장이 드러난다.
핵심 증거가 제시되어 있다.
상반되는 증거도 검토되어 있다.
법률판단과 사실판단이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사건은 우선 결정서 중심으로 신속하게 심사할 수 있다.
B형 — 보완이 필요한 결정서
기본적인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만 중요한 증거평가가 빠져 있거나, 일부 구성요건에 대한 판단이 충분하지 않다.
이 경우 관련 부분의 기록을 추가로 확인하면 된다.
C형 — 부실한 불송치 결정서
고소인의 핵심 주장에 대한 답이 없다.
증거평가가 거의 없다.
주요 증거가 누락되어 있다.
결론은 있지만 그 결론에 도달한 논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 사건은 기록을 더 깊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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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을 평가하는 질문도 표준화할 수 있다
부장검사라면 검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줄 수 있다.
피의사실은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는가.
고소인의 핵심 주장은 빠짐없이 반영되어 있는가.
피의자의 반박은 무엇인가.
객관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서로 충돌하는 증거를 비교했는가.
어떤 증거를 왜 믿고, 어떤 증거를 왜 배척했는가.
구성요건별 판단이 이루어졌는가.
법률적으로 논쟁이 있는 부분에 대한 판례 검토가 필요한 사건인가.
수사하지 않은 사항이 있다면 왜 하지 않았는가.
결론과 기록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는가.
이 질문 가운데 여러 개에 답할 수 없다면 그 사건은 한 단계 더 깊이 볼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검사의 시간을 아껴준다는 것이다
불송치심사부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결국 사람과 시간이다.
모든 사건을 동일하게 깊게 보면 중요한 사건에 충분한 시간을 사용할 수 없다.
반대로 결정서만 읽고 모두 종결하면 심사부가 존재하는 의미가 약해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심사의 깊이를 달리하는 기준이다.
결정서가 충실하다면 그 논리를 검증한다.
결정서가 불충분하다면 기록으로 내려간다.
결정서와 기록 사이에 모순이 있다면 더 깊게 본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사건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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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데이터가 쌓이면 더 중요한 것이 보일 수 있다
불송치심사부가 사건을 처리하면서 결정서의 품질을 계속 분류한다고 해보자.
몇 달만 지나도 통계가 나온다.
어떤 죄명에서 부실한 결정서가 많이 나오는지.
어떤 수사기관에서 반복되는 문제가 있는지.
어떤 유형의 부실 결정서가 실제 재수사 요구로 이어지는지.
어떤 증거가 반복적으로 검토되지 않는지.
이것은 단순한 사건처리 통계가 아니다.
경찰의 불송치 판단이 어디에서 취약해지는지를 보여주는 품질관리 데이터가 될 수 있다.
그 데이터를 다시 경찰과 공유하면 더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좋은 불송치 결정서의 기준’이 만들어질 수 있다
불송치심사부의 목표가 경찰의 결정을 많이 뒤집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경찰이 처음부터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좋은 불송치 결정서는 어떤 문서인가.
고소인의 주장에 답한다.
피의자의 반박을 검토한다.
객관적 증거를 평가한다.
반대 증거도 다룬다.
적용 법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왜 이 사건을 더 이상 수사할 필요가 없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 정도의 결정서라면 불송치심사부도 경찰의 판단을 존중하기 쉬워진다.
반대로 그 기준에 미달한다면 심사부가 기록을 더 깊게 들여다볼 이유가 생긴다.
그렇게 보면 불송치심사부 부장검사가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은 거창한 재수사 기준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단순한 것일 수 있다.
“좋은 불송치 결정서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조직 내부의 공통 기준이다.
불송치심사의 효율성도,
경찰의 수사 품질도,
고소인과 피의자의 절차적 신뢰도
결국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불송치 결정서를 보면 경찰이 사건을 얼마나 이해하고 판단했는지가 보여야 한다.
그리고 불송치심사부의 첫 번째 사건 분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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